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즈키 모모노스케/비판 (문단 편집) ==== [[코즈키 히요리]] ==== 와노쿠니의 오이란 코무라사키의 정체가 모모노스케의 여동생 [[코즈키 히요리]]라는 것이 밝혀지자 더 비판을 받고 있다. 히요리는 [[카와마츠]]와 13살까지 살다가 자기 때문에 굶주리는 카와마츠에게 미안해서 떠나고 [[집창촌|유곽]]에 들어가 스스로 [[유녀]]를 자처, 와노쿠니의 백성을 괴롭히는 악질 부자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성적 매력으로 타인을 파멸시키고 돈만 밝히는 표독스런 유녀를 연기하며 부모의 원수인 [[쿠로즈미 오로치]]의 여자가 되는 등 모모노스케보다 더 비참하게 살았기 때문이다. 오죽하면 히요리는 '오로치만큼은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싶다'고 분노와 증오를 표현했는데, 그만큼 수치스러웠다고 볼 수 있다. [[소년만화]]라 그런지 유녀의 생활이 어떤지에 대한 상세 정보는 생략되었지만 [[요시와라 유곽#s-6|유녀는 팔려온 순간부터 유곽에 저당 잡힌 비참한 인생이다.]] 오이란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대부분이 유곽 운영비, 카무로 식비, 치장비로 빠져나가 스스로 빚을 갚고 나가는 건 불가능했고, 결국 미우케라고 돈이 많은 손님이 빚을 갚아주는 대신 손님의 첩이나 부인이 돼야 한다. 그런데 미우케 비용은 화대 비용보다 더 비싸며, 특히 오이란은 유곽 주인으로서도 좋은 돈벌이였으니 보내고 싶지 않아 가격을 배로 올렸다. [[성병]]에 걸리면 사망하거나 유곽에서 쫓겨나 '요타카'라 불리는 길거리 싸구려 매춘부로 전락했다. 실제로 화장독과 성병, 그 시절의 수준 낮은 의료 기술로 말미암은 위험한 [[낙태]]로 인해서 유녀들의 평균 수명은 만 23세였고, 설령 운이 좋게 성병에 안 걸리고 오래 살아서 27세에 은퇴해도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매춘과 가무 정도였으니 유곽에 남아서 후배 양성이나 오이란의 시중들기, 뚜쟁이로 일을 바꾸는 등 유곽에 팔려오거나 태어나면 평생 유곽에서 살아야 하는 비참함 그 자체였다. 현재 [[요시와라]] 거리 일부였던 [[도쿄]]도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에는 [[죠칸지]]라는 절이 있다. 성병이나 길거리에서 매춘하다가 객사하거나 요시와라의 계율을 어겨 처형당한, 장례도 안 치러 주고 길바닥에 대충 버려진 유녀들의 나게코미데라(던져버리는 절)로, 죠칸지에는 유녀들의 유골함이 2,000개가 넘게 있다. 그나마 히요리는 [[덴지로]]가 곁에 있어줬고 유녀 또한 위장 신분에 가까웠기에 다른 유녀보다 나았으나, 모모노스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20년이었다. 요약하자면 히요리는 공주에서 매춘부로 사회 최하위 계층으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오빠보다 더 고통스러운 20년을 보냈는데도 오빠보다 자신의 위치를 더 잘 알고 현실 감각도 뛰어나다. 그나마 덴지로임이 밝혀진 쿄시로가 그녀를 거두었기에 버팀목이 확실히 있었다는 차이는 있다. 다만 이미 와노쿠니로 복귀한 뒤 쿠리에서 그렇다 할 부귀영화도 못 누렸고, 기워진 옷을 입고 다니는 등 공주라고 할 만큼 형편이 좋지는 않았다. 다이묘의 딸이었지만 오히려 5년 동안의 행실로 비웃음을 당했기에 완전히 수직 낙하적인 추락은 아니다. 물론 그래도 마음 편히 지내던 오뎅의 생전과 그 후 유녀로 들어간 삶의 차이는 분명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